가끔 살다보면 느끼는 어떤 ' 느낌 ' 들은 내 어휘력이 부족해서, 또는 언어라는 것 자체의 한계 때문에, 아니면 내가 나 자신의 느낌을 파악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그 느낌 자체를 온전하게 표현하지 못하곤한다. 그 느낌을 묘사하는 어떤 단어나 서술을 토해내놓고 물끄러미 바라보다보면, 그건 내가 느꼈던 것의 일부조차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참으로 답답한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사람들은 아주 장황하고 멋들어진 비유라던가 묘사를 고안해내곤 한다. 예를 들어 내가 ' 몹시 초조하고 긴장된 느낌 ' 이라고 말하면, 이건 그 자체로 아무런 감흥이 없다. 그러나 아래와 같이 쓰면 좀 다를지 모른다.
내가 휴가나왔다가 귀대하느라 상봉 터미널에서 사창리 가는 고속버스를 탔는데 말야, 타자마자 똥이 마렵더란 말이야. 그래서 화장실에 가려는 찰나, 기사아저씨가 버스를 출발시켰지. 그렇다고 내가 기사아저씨 붙잡고 나 화장실 다녀올동안 가지 말고 기다려달라고 부탁할 수는 없잖겠어? 일단 가다가 휴게실에 들르면 괜찮겠거니 ... 하고 지그시 참았지. 뭐 사실 그때까지는 변의는 있었지만 그렇게 급하다고 할만한건 아니었고. 근데 이게 오산이었던거야. 차가 한 이십분쯤 가니까 갑자기 배가 싸늘하게 아파오는게, 손발이 차가워지고 이마에 식은땀이 송글송글 배어나기 시작한거지. 난 이 느낌 알아. 이건 바로 설사의 느낌이야. 이런 경험 다들 한번씩 있을거야. 일단 일차 웨이브를 버티면, 잠시간의 휴지기가 온다? 살짝 정상상태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지. 그러나 이건 그야말로 착각이야. 이차 웨이브는 일차보다 더 강한 자극을 동반하거든. 나는 일차 웨이브에서 감을 잡고 긴장된 상태로 휴지기를 맞이한 후, 심호흡을 하면서 이차 웨이브를 기다렸어. 헉 근데 이 이차 웨이브가, 내 예상을 뛰어넘는 강도로 온거야. 아 씨발 좆됐구나싶었지. 정신이 막 혼미해지면서 기절할 것처럼 앞이 핑핑 돌아. 그러면서도 필사적으로 괄약근에 힘을 줘야되는거야. 야, 기절하는건 괜찮아. 진짜. 기절하는건 정말 괜찮아. 고속버스 좌석에 가만히 앉아있다가 느닷없이 기절하는게 모양새는 좀 웃기겠지만, 죽지만 않으면 괜찮아. 근데 문제는 기절만 하는게 아니라, 기절하면 똥꼬에 힘이 풀려서 똥이 삐져나온단 말이야. 그 사태가 진짜 무서운거지. 난 그래서 정신줄을 놓고싶어도 놓지 못하고 필사적으로 개겼어. 가까스로 이차 웨이브가 지나갔지. 숨이 차더라. 농담 아니고 이차 웨이브 후에 휴지기에 옆 사람이 나를 빤히 쳐다보길래 왜그러나했는데, 내가 헐떡거리고 있는거야. 낯뜨거웠을거 같냐? 진짜? 좆까. 삼차 웨이브가 닥쳐올걸 뻔히 아는데 그 와중에 넌 낯뜨거울 경황이 있을거 같아? 면전에다대고 ' 신경끄슈 ' 라고 말할까하고 갈등하다가, 말하느라 똥꼬에 힘들어가서 삼차 웨이브 빨리올까봐 참았어. 이번에는 나도 준비를 좀 했지. 손에 들고있던 차에서 보려고 터미널에서 산 주간지를 돌돌 말아서, 입에 물었어. 그리고 차분하게 다음 웨이브에 대비했지. 아차, 기사아저씨에게 최대한 가까운 휴게소에서 잠시 내려달라고 말하는걸 까먹었다. 휴지기에 말해야하는데... 라고 생각하고 일어서려는 순간, 삼차가 들이닥친거야. 나는 이빨 진짜 꽉 깨물고 양손으로는 앞사람 좌석 뒤에 붙은 손잡이를 꽉 붙들고 말 그대로 이를 악물고 참았어. 아 근데 옆자리 병신새끼가 또 내 오른쪽 어깨를 톡톡 건드리면서 물어보는거야. " 괜찮으세요? 어디 아프신거 같아요. " 아 뭐 급한 와중에 내가 상태가 안좋아보이니까 참견하는 것까지는 참아주겠는데, 왜 어깨를 건드리냐고. 이런 순간에는 전신의 근육 오라기 하나하나의 움직임이 모두 괄약근의 힘을 빼는 방향으로 작용한다고. 입에는 잡지를 물고 있어서 말은 못하고 어설프게 " 으흐흐흐 " 하는 신음소리만 흘러나오는데, 이게 또 소리를 크게 지르면 후장이 릴렉스할까봐 겁나서 진짜 작은 소리가 피식피식 흘러나오는거야. 앞이빨이 부러지도록 참아낸 후에야 다시 도래한 휴지기에 아주 약간의 안도감과 함께 필사적으로 버스 앞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어. 기사아저씨에게 말해서 빨리 차 세워야지. 요즘은 버스에서 똥싸면 디씨에 웃긴 짤방으로 올라온다고. 우리부대에만도 디씨질하는 새끼들이 얼마나 많은데. 바지에 똥싼 사진 디씨에 뜨고도 부대 들어가서 후임들에게 가오잡을 수 있을거같아? 좆되는거지 그냥. 기사아저씨에게 상황을 설명했더니 아저씨가 알았다면서 운전대를 트는데, 진짜 하늘에 감사하게도 바로 코앞에 휴게소가 하나 있었던거야. 눈에 눈물이 고일 것 같더라고. 근데 울지는 못했어. 왜냐고? 버스가 서서 문을 여는 것과 동시에 사차 웨이브가 몰려왔거든. 버스 문이 열렸어. 근데 기사아저씨가, 잠깐 들렀다가 곧바로 갈 요량으로, 화장실에서 졸라 먼 위치에 차를 세운거야. 앞에 보이는 화장실간판까지 한 오십미터는 넘게 걸어야하는거 같아. 될거같아? 사차 웨이브와 싸우면서? 야 농담아니라 나 ' 지금 여기서 바지에 똥 안싸게 해주시면 저 군생활이 2개월 늘어나도 좋아요 ' 라고 생각했다. 거의 기도에 가까웠지. 버스 밖으로 첫걸음을 떼는데, 닐 암스트롱이 한 말이 떠오르더라고. ' 남들에겐 좆도아닌 한걸음이지만 내겐 졸라 먼 화장실로의 거대한 첫걸음이다 씹라 '
예를 들기 위해 쓴거치곤 조낸 기네 -_- 아무튼 ... ;; 이때 화자가 느끼는 ' 초조함과 긴장됨 ' 의 감정은 공공교통기관에 갇혀서 바지에 똥을 쌀 뻔 한 경험이 있는 누구라도 공감 ( 글재주가 찌질해서 공감안되면 ㅈㅅㅈㅅ ) 할만하다. 바로 이런거다. 아서 C. 클라크의 작품들이 주는 경험과 느낌은, 단 몇마디의 말로만 말해서는 그 느낌을 온전하게 전하게 힘들다. 라는걸 감안하고, 그의 작품들은 결국 ' 웅장함 ' 과 ' 우주에 대한 동경 ' 의 정서를 정말로 가슴 깊이 아로새겨준다. 유년기의 끝에서 보여주는 집단적 의식으로서의 인류의 진화나, 낙원의 샘이 펼치는 궤도 엘리베이터와 별과 종교의 관계들, 라마가 보여주는 외계지성체에 대한 동경 등 대부분 꽤나 상이한 소재들을 가지고 서로 별 연관관계도 없는 이야기들을 펼치고 있음에도, 그의 작품들은 언제나 ' 거대한 우주에 대한 작고 미미한 인간의 동경 ' 을 여실히, 깊이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나는 아서 클라크가 내게 느끼게 해주는 이런 감정들이야말로, SF가 담는 정서의 가장 밑바닥에 자리한 것이라고 믿는다. SF라는 장르는 그 장르의 속성상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지만, 이 장르 본연의 느낌이란 바로 이런것 !! 이랄까? 영웅문으로 치자면 아서 클라크는 장삼봉에 해당하는 인물이라, 그 작품들의 심연은 헤아릴 수 없이 깊고, 없는 것이 없으며, 뜻대로 이루지 못할 것이 없도다 ... 뭐 대략 이렇다. 단적으로, 나같이 얄팍한 인간에게 도무지 어울릴 법조차 하지 않은 ' 몹시도 진지한 ' 작품만 써내려갔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SF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줄곧 나의 베스트3 에세프작가들 리스트에 포함되어 있다. 참고로 다른 두 명은 각기 젤라즈니와 테드 창인데, 이 두 명은 리스트에 든 역사는 오래 되었으나 중간에 한번씩 바뀌었던 최종결과다.
그래서 아서 C. 클라크는 심오한 지혜를 갖춘, 개인적인 감정보다는 그 업적으로 먼저 다가오는 대가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작가. ' 웅장함 ' 이라는 단어로 대변되는 작가. ( 아마도 오래오래 ) 나의 베스트3 에세프작가.
0. 갓 군대를 제대했을 때 내 몸에는 대단한 ... 까지는 아니어도 꽤 그럴싸한 근육들이 붙어있었다. 나는 병장때까지도 성실하고 근면한 말년생활을 보냈기 때문에, 각종 부대작업에 대부분 참여했고 ( 몸보다는 혀로 작업했지만 ... ) 덕분에 붙은 근육들이 나름 토실했었다. ( 지금은 그 근육들이 모두 배로 가있다. 근데 애들이 뭉치다보니 좀 두리뭉술하긴하다 ;; ) 제대 직후, 아침에 일어나면 샤워하러 들어간 욕실에서 김서린 거울을 통해 희뿌옇게 비치는 내 배의 가운데 식스팩을 감지하곤 난 오른손으로 머리를 슬쩍 쓸어넘기며 ' 시밤쾅 졸 머찌군 ' 이라고 뇌까리곤 했던 것이다.
근데 솔직히 말하면, 내 근육들은 별로 예쁜 편은 못됐다. 나중에야 이유를 알게됐는데, 원래 예쁜 근육이란 헬스장에서 필요한 부위들을 주의깊게 키움으로써 만들어지는거라고 하더라. 근데 군부대의 막노가다로 자라난 나의 근육들은 미관보다는 실용성을 위주로 조성되었기에, 내가 흔히 알고 있던 ' 쌔끈한 근육남 ' 의 모양새와는 다를 수 밖에 없었던 것. 엄밀히 말하자면 나는 보기좋은 근육도 일단은 운동의 성과이니 나쁘지 않지만, 그보다는 실용적인 근육들이 좀더 멋지다고 생각한다. 보기에만 좋은 근육이란 일종의 악세사리 아니겠는가. 뭐 꼭 내가 평생 한번도 헬스장에 가본 일이 없고, 그래서 모양새가 근사한 근육을 키워본 일이 없어서 비하적으로 하는 말은 아니다. ;;
1. 본 시리즈의 주인공 제이슨 본과, 이 영화 자체는, 딱 ' 실용적인 근육 ' 의 냄새를 풍긴다. 실제로 이 영화는 다큐멘타리가 아니고 철저히 사람들에게 보여지기 위해서 찍은&만든 영화이므로 엄밀히 말해 어디에도 실용적인 근육일 이유따위는 없다. 다만 그 이미지가 그렇다는 것이다. 이성재는 홀리데이를 찍으며 근육을 키우긴 키웠으되 모양새가 다른 얼짱 남자배우들과 다르자 기자가 던진 질문에 대해 ' 극중 캐릭터의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 헬스장 근육보다는 실용근육을 키우는데 중심을 뒀다 ' 라고 말했다던데, 뭐 비슷한 케이스 아니겠어? 어차피 포스트모던인데 까이꺼 ...
본 시리즈로부터 군더더기없는 담백한 액션이 추출되어 나오는건 제이슨 본이라는 캐릭터의 ' 철저한 스파이 ' 라는 설정과 더불어 감독의 멋진 연출이 한몫을 한다. 일반적인 액션 영화에서 곤경에 처한 주인공이 주변의 사물이나 상황을 이용해 이를 빠져나갈 경우, 영화는 우선 주인공이 동원하게 될 도구나 정황에 대해 보여준다. 예컨데 주인공의 앞에 칼을 든 적 이 있고, 이 적에 대항하여 잡지책을 돌돌말아 사용하게 될 경우, 일반적인 영화는 우선
1) 주인공이 상대편의 칼을 응시하고, 2) 상대편으로부터 시선을 거두어 3) 잡지책을 돌아보고 4) 잡지책을 돌돌마는 장면이 이어진 후, 5) 격투에 들어간다.
우선 주인공이 조심해야 할 대상인 ' 상대의 손에 들린 칼 ' 을 보여주고, 이후 주인공의 심리가 잡지로 옮겨가 ' 저 잡지를 이용해 대항해야겠군 ' 하는걸 보여준 후에야 비로소 실제 액션에 들어간다. 인물의 심리를 카메라를 통해 관객에게 일치시켜준다. 근데 본에서는 이런 자세한 설명은 대부분 생략하고 지나간다. 탕헤르의 옥상 점프씬이 대표적으로 그런데, 본이 마구 달리면서 양손에 옷가지들을 움켜쥘 때 관객들은 그가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지 전혀 모른다. 그저 약간 의아해 할 뿐이다. 그러나 이윽고 이어지는 장면들에서 그가 왜 그랬는지는 당연히 밝혀진다. 보통의 액션 영화에서라면 우선 유리조각들이 박힌 담벼락을 카메라로 한번 잡아주고, 주인공이 이를 응시하다가 이윽고 시선을 돌려 수건을 바라보는 장면이 이어진 후에 수건을 둘둘 감겠지. 본 시리즈엔 그딴게 없다는 얘기.
사실 이 제이슨 본이라는 캐릭터는, 의식적인 정신상태에 자기 자신에 대한 아무런 기억이 없음에도 몸이 먼저 움직여서 싸울 수 있을 정도로 ' 스파이로서의 액션이 몸에 익은 ' 작자이다. 따라서 그의 의식은 대처방법에 대해 의식적 사고의 레벨에서 궁리하거나 생각하지 않는다. 앞서의 예에서 카메라의 움직임이 인물의 의식의 흐름과 관객들을 일치시키기 위한 장치라면, 무의식중에 행동해버리는 본이라는 캐릭터는 의식적으로 그런 대처법들을 생각지 않으므로 오히려 더 말이 되는 걸수도 ... 라는 나의 해석은 솔직히 좀 어거지가 심하지.
엄밀히 말하자면 그런 효과를 감독이 역으로 이용해서 관객들을 감탄케 하는데 이용하고 있다는 게 맞는 말일게다. 즉 기존의 액션 게임들이 보여주는 구도랄지 흐름을 일종의 ' 군더더기 ' 이자 ' 쓸데없는 후까시 ' 로 치부하고, 담백한 액션 그대로만을 묘사한다. 한편으로는 그렇게 함으로써 본이 한타이밍 숨을 고르며 생각하고나서 행동하는 타입이 아니라, 모든 일들을 행동하며 동시에 다음에 할 일들의 해결책을 신속하게 궁리해내는 일급 액션서비스 에이전트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 위한 것일 수도. 아무튼 이게 본을 보며 내가 느낀 ' 담백하고 깔끔한 액션영화로 느껴지는 이유 ' 이다. 뭐 딱히 액션씬에만 이런 생각이 반영된게 아니라 영화 전체적으로 그런 부분들이 아주 강하게 드러나고 있기도 하고.
2. 한편 이거랑 정말로 잘 맞물리는게 녹풀감독의 킹왕짱 멋진 핸드헬드 카메라의 사용이다. 옛날 액션 영화들은, 카메라의 움직임이 참 차분했다. 오래전 홍콩 무술영화나 하다못해 성룡이 나오는 러시아워같은 액션영화들을 보라. 공들여 짠 배우들간의 합을 처음부터 끝까지 잘 보여주기 위해서 카메라는 정말로 곱고 얌전한 동선을 그린다. 안그러고 여기저기서 막 찍어댄 후 적당히 짜깁기를 하면, 관객들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런짓 안해도 복잡한 몸짓들을 따라가기 버거운데 거기다가 카메라까지 오락가락하면 죽도밥도 안되는 형세.
근데 요즘에는 ( 이라기엔 벌써 꽤 오래전부터지만 ) 액션영화들이 카메라를 미친듯이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뭐 적당한 선에서 그러는건 봐주겠는데, 나름 스타일리쉬하게 찍겠답시고 액션씬의 진행이 이해가 안되도록 흔들어대는거다. 카메라 돌아가는 방향과 속도가 무당이 굿판하면서 헤드뱅잉 하듯한다. 그래서 내가 ' 스타일리쉬 ' 라는 단어를 졸라 싫어하는거다. ( 구체적으로는 데메크라는 게임이 짜증스러워서 그렇게 되었지만. 데메크도 어차피 카메라가 지랄같은게 가장 큰 문제. ) 감독들의 의도는 아마도 그 현란한 카메라의 움직임을 액션씬 자체로 받아들여달라. 세세한 디테일들을 보려고 하지말고 그 장면 전체가 주는 이미지를 파악해라... 뭐 이런거겠지만 나같이 고지식한 구세대 액션팬들은 그런거 썩 달갑지 않다. 창의적인 액션을 짜내지 못하고 카메라 좀 흔들어서 카바하려는 얄팍한 수작같단 말이지.
하지만 녹풀감독은 다르다. 그는 최근의 트렌드를 반영하여 아무튼간에 카메라를 흔든다. 그것도 다른 어떤 액션영화 감독보다 심하게 흔든다. 근데 놀랍게도 그 속에서 관객들이 알아봐야 할 요소들은 모두, 깔끔하게, 다 들어가 있고 이해가 된다. 카메라웍의 스타일은 스타일대로 살리면서, 씬의 이해는 그것대로 모두 정갈하게 머리에 들어오는거다. 이런 면모를 간단하게 맛볼 수 있는게 얼티메이텀의 ' 오도바이 폭파씬 ' 이다. 블랙브라이어의 ' 자산 ' 이 길바닥에 떨구는 가방에 대략 0.2초 정도의 시간을 할애한 후, 본이 뒤돌아서 오도바이를 응시하는 ( 뭐 이정도 되면 이정도의 설명은 해줘야 관객이 뭐가 어케 돌아가는지 이해를 하지. 이런거도 없으면 담백한게 도를 지나쳐 불친절한게 된다. ) 또다시 0.2초를 할애함으로써 도합 불과 0.4초만으로 모든 상황을 관객에게 다 알려준다. 구구절절하게 누가 무전으로 본의 귀에 꽂힌 이어폰을 통해 ' 본, 지금 니 앞에 놓인 가방은 사실 너의 시선을 붙잡고 너로 하여금 닐의 자동차를 멈추게하려는 상대의 계략이고 실제로 폭탄은 오도바이 안에 장착되어 있 .. 아악 ~ ' 같은 대사를 하는게 범상하거나 비범할정도로 수준낮은 액션영화의 패턴이라면 말이다. 이런 놀라운 연출은 내 본 시리즈 이전에도 이후에도 본 일이 없다. 이 깔끔하고 산뜻한 액션연출이, 몹시 신선하고 마음에 든다.
3. 본을 보다가 문득 든 생각인데, 맷 데이먼은 주로 ' 쫓기는 / 심리적으로 압박받는 ' 인물을 연기할 때 정말 어울리고 멋지다. 굿윌헌팅에서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주인공이었던 그는 사실 좀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았었다. 그런 그를 내가 처음으로 눈여겨보기 시작한게 ' 리플리 ' 라는 영화다. 이 영화 자체에 대한 평은 썩 좋지 않지만 나는 영화 속에서 수도 없이 거짓말에 거짓말을 이어가고, 그걸 막으려고 또 거짓말하고, 탄로나는걸 막기 위해 심지어는 살인까지하고, 이어지는 거짓말들을 마치 거미줄처럼 이어가면서도 결코 들키지 않고 잘도 도망다니는 맷 데이먼의 모습이 눈에 확 들어왔다. 마치 자신이 자아낸 거미줄에 달라붙어 옴쭉달싹 못하게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 또다시 새로운 거미줄을 자아내는 독거미처럼, 맷 데이먼은 쉴새없이 거짓말의 거미줄을 짜낸다.
근데 결정적으로 그가 멋져보이는건 그 무수한 거짓말의 그물도 그렇거니와, 그가 ' 고뇌하는 ' 장면이었다. 자신이 짜낸 거짓말과 범죄들의 그물망 속에서,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거짓말하는 본성에 대해 괴로워하고 고민하고 고뇌하는 맷 데이먼의 모습이 참 뭐랄지 ... 보는 나까지 공감해서 나는 거짓말도 안했는데 거짓말을 한 것처럼 괴로워지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 근데 이건 나만 그런가보다. 애초에 리플리를 본 사람도 별로 없는데다가, 봤다는 사람들에게 물어봐도 나처럼 재미있게 보지는 않은 듯 하던데. )
본 시리즈도 기본적으로 제이슨 본이라는 작자가 쫓기는 내용이니만큼, 리플리에서의 맷 데이먼의 모습과 겹치는 부분이 많다. 이번에 제이슨 본은 스스로의 거미줄에 얽혀서 고민하기보다는 자기가 짜낸 거미줄이 어떤건지를 몰라 그걸 알아내려고 헤매고 다니는 형세지만, 전체적으로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참회 또는 속죄를 하려하고, 그게 바로 본이 찾는 자신의 기억 뒤의 배후라는 점에서는 리플리와 통하는 부분이 있다. 자신이 저지른 죄에 대한 고뇌/자신이 저질렀을 것으로 생각되는 죄에 대한 고뇌. 그리고 바로 그런 구도가, 제이슨 본이라는 극중인물과 맷 데이먼이라는 배우가 상호작용을 일으키기에 가장 적합한 무대가 아닌가한다. 맷 데이먼은 우울한 성격을 가지고 열심히 쫓겨다니며 언제나 심리적인 초조함으로 안절부절 못하는 역할을 할 때 가장 멋지다.
** 이하 투명드래곤급 스포일러 있음
4. 본 얼티메이텀의 반전이 시시하다는 의견이 대세인 것 같던데, 내 생각은 다르다. 바로 앞에서도 말한거지만, 근본적으로 본은 자기가 저지른 죄에 대해 속죄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2편에서는 실제로 그렇게 했다. 비록 자기가 했던 일들의 일부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3편에서 그는 자기가 죄를 저지른 이유를 다른데서 찾고 싶어한다. 즉 트레드스톤 또는 블랙브라이어라는 프로젝트 내지는 그 관계자들에게 죄를 묻고싶어하는 것이다. 뭐 엄밀히 말하면 죄를 묻고싶어한다기보다는 ( 그건 복수잖아 ;; ) 이유를 알고 싶다던가 과정을 알고 싶어하는거지만. 요약하자면, 본은 ' 자기가 자의로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증거 ' 를 갖고 싶은거다. 비록 이미 저지른 죄에 대해서는 반성하고 있더라도 그게 자의는 아니었기에.
근데 얼티메이텀의 반전에서 이게 확 풀려버린다. 본은 누구의 강요도 없이 자기 자신의 의지로 그런 죄를 짓기 시작했던거다. 이건 단순히 서류에 싸인하는 것과는 또 다르다. 그는 요원이 되기 위해서, 무고한 - 어찌되었든 본은 그의 죄를 몰랐으므로 이건 다른 사람에겐 몰라도 적어도 본에게는 명백히 무고하다고 봐야한다. - 자를 이유없이 살해해버린다. 단지 요원이 되기 위해서.
단순히 영화의 설정이나 세팅에 목매지말고 제이슨 본이라는 캐릭터가 아이덴티티로부터 수프리머시를 거쳐 얼티메이텀에 오기까지의 심리상태를 잘 따라온 관객이라면, 얼티메이텀의 막바지에 드러나는 반전의 충격은 꽤 크다. 요컨데 착한 편인 줄 알았던 작자가 알고보니 나쁜 편이었다. 뭐 여기까진 범상하지. 근데 그 주체가 바로 다른 사람도 아닌, 우리가 3편에 걸쳐 같이 뛰고 때리고 찢고 부수고 고민하고 고뇌하며 긴장해왔던 주인공이라는건. 이런 설정을 맛볼 수 있는 또다른 액션 영화로는 ' 토탈리콜 ' 이라는 좀 오래된 영화가 하나 있는데, 주인공이 ' The Gorvernator ' 아놀드 형이다. 본에 비하면 아놀드 형의 액션이야말로 애들 소꿉놀이같지. 아울러 3부작에 걸쳐 끊임없이 함께 고민해왔던 끈끈한 정도 없고 말이야.
최근에 제일 기대되었던 영화 "본 얼티메이텀(The Bourne Ultimatum)"을 보았다. 역시나 자동차 추격장면은 단연 압권이었고, 일대일의 격투 장면도 일품이었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모나코에서 본과 트레드스톤의 암살자의 격투장면이었다. 주변의 사물을 무기로 사용해서 싸우는데 "와우~"감탄사가 절로나온다. 결국 양장된 책을 가지고 싸운 본이 촛대를 사용한 암살자를 이기게된다. 또한 특이한점은 이전작과 다르게 본이 단지 1명(모나코에서 싸운..
몇해에 걸쳐서 중년연기자들 ( 사실 듣기 좋으라고 중년이지 실제로는 노년이죠. 전부 할아버지 할머니들인데. ) 의 약진이 눈에 띈다고는 하지만, 결국은 그 모든게 다 ' 코믹코드 ' 였던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나이들어놓고서 나이값못하고 주책부리는 모습과, 자신은 위엄을 부리려고 하지만 아무도 그 권위에 복종하지 않는데서 오는 불일치? 뭐 이런것으로부터 코믹함을 이끌어낸다. 사실 그 이상의 뭔가가 더 좀 있지 않나 ... 하고 생각했는데 최근에는 그냥 거기까지인가보다라는 결론으로 치닫는 중. 그 중에서 다소나마 자기 캐릭터 확보에 성공한 사람이라면 역시 백윤식이 있을테고, 하이킥을 못봐서 난 잘 모르지만 듣자하니 이순재도 만만치 않은 것 같고... 그러나 안타깝게도 다른 사람들은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권순분여사 납치사건은 그래서, 나문희 여사가 자기만의 새로운 캐릭터 구축에 성공할 것인가? 하는 점에 기대를 걸고 봤지만 딱히 그렇지가 못하다. 위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시도 자체는 썩 좋았다. 권순분여사가 그저 떠벌이 동네 할머니같기만 하지만 실제로는 아주 똑똑하고 예리한 그야말로 ' 현명한 ' 할머니라는 컨셉은 괜찮았거든. 몇해전 영화 마파도에서의 할머니들이 ' 그저 수다만 떨 줄 알 뿐, 그거말곤 좆도 없었던 ' 것보다는 백배 낫다. 할머니들은 그저 쪼그라든 할망구들로만 취급하는 마파도라는 영화는, 쓰리할머니즈라는 사실상 결정적 아이템을 전혀 활용을 못하면서 좆구려진거라고 보거든.
근데 이런 바람직한 지향점에도 불구하고, 영화 전체가 뭔가 좀 엉성하다는 느낌이라서 별 재미가 없다. 납치씬의 소동은 몸으로 메꾸고 가자는 스타일일 뿐 뭔가 기발하게 웃기는 장면 한두개가 없다. 거인녀가 등장하는 씬은 합성티가 지나쳐서 어색하다. 거인녀와 유해진의 연애씬은 밭가는 장면이 살포시 웃길뻔 하기도 했으나 감독이 코드를 뭔가 좀 잘못 잡은게 아닌가싶더라. 이후의 추격씬이니뭐니 특히나 그 돈탈취씬이 질질 늘어지는데 대해서는 ... (- ㅡ; )
결과적으로 왠지 전체적인 줄거리를 글로 써서보면 근사한데, 막상 만들어보니 김빠진 느낌이 나는, 그런 영화랄까. 영화를 이미 예매한 상태에서 알게된건데, 권순분여사 납치사건을 만든 감독이 주유소 습격사건을 만든 감독이더라. 주유소 습격사건은 나름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아무 생각없이 깨고 부수는게 그럭저럭 괜찮았거든. 하지만 솔직히 그게 졸라 웃긴 영화였던건 아니지. 그래서인지 다른 영화들은 좀 별로였다. ( 그렇다고 배우가 테레비에 나와서 자기가 출연한 영화에 대고 그 영화 좆같았어요. 하고 말하면 안되지 차승원씨. 나 당신 좋아했는데 귀신이 간다 씹는거보고 깼어. ) 감독이 주유소 습격사건의 히트요인을 잘못 파악한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윤제균이 씹창나는 꼴을 보고 다들 좀 본받아야한다. 윤제균의 장기는 개그이지 신파가 아닌데, 반드시 신파를 넣어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려 말아먹은 낭만자객 ( 사실 이건 윤제균이 아무리 날고긴다한들 일단 김민종이 나오니까 필패할 수 밖에 없었지만. ) 을 보고 본받으시라.
우리나라 테레비 개그프로그램들이 요즘은 한풀 꺽였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쟁쟁하다. 이게 다 개그맨들이 매주 모여서 박터지게 이갈며 아이디어 회의하고 끊임없이 자기자신들을 갈고닦기 때문이라고 본다. 이 사람들이 하는 고생을 나로서야 미루어짐작조차 안되지만, 아무튼 저런걸 매번 짜내려면 얼마나 힘들까하는 생각은, 아주 가끔만 이 프로그램들을 보지만, 하고 있다. 뭐 심지어는 아이디어 회의때 머리가 혹사당하다못해 물리적으로 머리를 혹사시키는 마빡이같은 것조차 있다. 근데 우리나라의 코믹영화들은 이런 고민을 잘 안하는거 같다. 물론 눈에 띄는 몇몇이 있긴하지. 예지원 나오는 죽어도좋아라던가하는 ... 근데 그런거 빼고는 대체로 고만고만한 컨셉 울궈먹기라던가, 이름만 들어도 토나오는 것들이 있다. 조또 전부 날로 먹으려고 들어요. 아 물론 저라도 날로먹을 수 있으면 날로 먹겠습니다. /굽신굽신 뭐 이래도 저래도 재미만 있으면 나야 ㄳㄳ 하지만, 문제는 재미가 없다구.
여기, 어떤 숫사자가 있다. 멋진 갈기를 분노로 일으켜세우면 보는 적은 그에 벌벌떨고, 뒤에 붙은 아군은 ' 사기가 + 200 증가하였습니다 ' 버프를 얻는, 그런 용맹스럽게 생긴 사자다. 그는 가족을 이끌며, 게을러터진 삶을 살아간다. 평소에는 암사자가 벌어오는 돈으로 근근히 먹고살며 집구석에 짱박혀 글쓴다고 깨작댄다. 그러나 진짜로 뭐 근사한 걸 쓰는 것 같지는 않다. 한편, 유사시 그는 분연히 떨쳐일어나 ' 성질 부린다. ' 결코 ' 가족을 보호 ' 뭐 이딴게 아니다. 그냥 ' 성질 부린다. ' 근데 이 성질 부리는게, 어설픈 송곳니 좀 났다고 설레발치는 듣보잡 맹수가 아니라 맹수 중에서도 왕이라고 불리우는 숫사자의 성질이니만큼, 아무튼 파장이 크긴 크다. 스케일도 좀 있다. 무엇보다 호쾌하다 !! 그렇다. 갈기를 일으켜세우고 위엄있게 일어나 거대한 트림으로 적을 위협하며 덤벼드는 상대방을 한입에 깨물어 저멀리 던져버리는 그의 위용은, 호쾌하다. 이거야말로 게을러터진 주제에 어디가서 가오는 좀 잡아보고 싶은 작자라면 누군들 동경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낭만적인 숫사자의 삶이 아닌가 !!
그러나 현실의 인간사회는, 정글이나 밀림의 자연생태계가 아니다. 인간들은 인간계라는 사회를 아주 탄탄하고 공고하게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그 속에서 일개 짐승에 불과한 숫사자는 그저 ' 건드리면 귀찮은 맹수 ' 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사람들은 이 숫사자를 ' 극좌파 사회주의자 ' 등의 이름으로 부른다. 실상 그의 진짜 본심도, 이름도, 정체도, 극좌파 사회주의자는 아니다. 그래서, 이 숫사자의 현실에서의 삶은 좀 비루하다. 스스로의 자존심만 먹고 살아간다. 아들에게는 성숙하지 못한 아빠라고 구박받고, 어딜간들 말썽장이로 취급받으며, 공공기관에는 ' 요주의 맹수 ' 로 찍혀서 형식적이나마 감시도 받는 몸이다. 이 숫사자의 불운이라면 역시, 그가 가는 곳에는 언제나 말썽거리들이 따라온다는 점일까. 사자는 그저 얌전히 앉아 꾸벅꾸벅 졸며, 글쓰는 척이나 하며, 그렇게 게으른 삶을 살아가고 싶을 뿐인데, 사람들은 그를 가만두지 않는다.
' 어떤 숫사자 일대기 ' 를 그 숫사자의 어린 아들 눈으로 본 이 이야기는 숫사자의 모험담이 호쾌하여 참 재미있긴 하지만, 매번 싸움에서 이김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그 싸움 뒤에는 쫓겨나야만 하기 때문에, 좀 우울하기도 하다. 뒤로 갈수록 모험의 스케일은 커지더라도 ( 하긴 전반부에는 사람도 죽어나가니 뒤에가서 스케일이 작아진다고는 못할지도 모르겠다. ) 정서적으로는 약간 우울해진달까. 그리고보면 세상의 모든, 앞으로 부모가 되고픈 자들은 젊었을 적에 멋들어진 모험담 한두개쯤 만들어놔야하는거 아닌가 싶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 ( 숫사자의 아들 ) 은 그걸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나라면 우리 아버지가 왕년에 미군기지 팬텀기에 불을 질렀다던가,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열혈 운동가였다던가하는걸 알게되면 은근 뿌듯할텐데 말이다. 그렇다고 내가 뭐 일상의 소중함이라던가 수십년간 회사다니는 노고를 무시하자는건 아니지만, 어디까지나 ' 숫사자의 호쾌함을 부러워하는, 게을러터진 주제에 어디가서 가오는 좀 잡아보고 싶은 작자의 시각 ' 으로는 말이다.
1. 애플에서 나온 제품들은 인기가 높다. 무조건 그렇다. 몇년전까지만해도 이런 인기의 요인을 나름 짐작 정도는 할 수 있었다. 디자인이 깔끔하고 예쁘니까. 마치 21세기초 소니제품들이 인기있었던 것처럼. 근데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제 전자제품 업계에서 애플만큼 단아하고 아름다운 디자인을 찾기가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애플 제품들은 계속해서 인기가 있다. 난 그 이유를 잘 모르겠다. 이제 아이팟도 아이폰도 디자인이 여전히 그 기조를 이어간다는 느낌은 가지고 있지만 다른 경쟁제품들에 비해서 어디가 월등히 더 뛰어난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다는건, 애플의 제품들이 왜 인기가 있는지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는거다. 애플의 제품들은 기술적으로 뛰어난가? 잘 모르겠다. 애플의 제품들은 내구도가 뛰어난가? 요즘 전자제품 시장에서 내구도는 기본중의 기본 = 타사 제품들도 일정 이상의 기본내구도는 모두 보장해주는게 당연한데다가, 워낙 제품의 순환율이 빠른 시장이라 그게 어느정도의 비중인지도 가늠하기 어렵다. 21세기에 출현한 ( 사실 그 이전부터 있어왔지만, 대중화된건 아마도 21세기가 아닐까하는데 ) 여러가지 개념들 중 나로서는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 명품 ' 이라던가 ' 브랜드 ' 의 힘인가?
이번 연구결과는 혈액형에 따른 성격유형 구분이 대중적으로 인기있는 주제이지만 학문적으로는 상관관계가 없다는 중론을 반박하는 것으로, 특히 기존의 혈액형 유형학 연구결과를 종합한 첫 연구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류 연구원과 손 교수는 지금까지 보고된 국내외 학자들의 혈액형 유형론에 관한 연구 약 50건을 바탕으로 한 혈액형이 특정 성격유형을 보인다는 비슷한 연구결과에 대해서는 점수를 합산하고 반대의 연구결과에 대해서는 점수를 빼는 방식으로 혈액형별 성격 유형의 점수를 매겼다.
혈액형별로 특징적인 유형을 보인다는 연구결과만을 모아서 종합하면, 혈액형별로 특징적인 유형이 보인다는 결과는 당연한거 아닌가 -_- 주목되긴 개뿔이 ... 가끔 이런 분들의 연구는 나같은 서민을 참 우쭐하게 하는데, ' 이것들 뭐야, 나보다 잘난게 없네? '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게임을 다운 받기 위해 웹사이트에 접속했더니 아스트로 연구소의 수퍼컴퓨터 ' 중장년 ' 이 반겨준다. 이런 시밤쾅 !! ' 다운로드 과정이 아무리 지난해도, 한판은 꼭 해줄게 ' 라는 마음을 품게 만드는 캐간지 대문이다. 가입절차가 번거롭긴하지만 피할 수 없으니 어쨌든 무사히 넘기고, 게임을 다운받고, 인스톨하는동안 대충 메뉴얼 비스무레한거 한번 읽어주고, 본격적으로 게임에 진입. 기대감으로 부푼 가슴이 콩닥콩닥거리고 있었다.
' 수퍼컴퓨터 중장년 ' 의 센스는 게임 내의 곳곳에 그대로 녹아있다. 게임 플레이 자체는 그냥 뭐랄까 .. 세간에 알려진대로 기타루맨과 스페이스채널5 ( SC5는 내가 아주 좋아하는 게임 중 하나 ) 을 적당히 믹스해놓은 듯한 느낌. 리듬액션게임으로서의 새로운 모색을 보여주는 고뇌 !! 따위는 어차피 난 아랑곳하지 않으니 저멀리 던져두고 게임 플레이만 말하자면, 아무튼 흥겹다. 그러나 본격적인 문제는 이제부터 시작
우선 너무 쉽다. 이지/노멀 모드는 ' 처음 플레이 ' 시에 미스/낫배드 없이 모두 굳/그레잇/퍼펙트로 클리어했다. 하드모드는 처음 들어가서는 살짝 어려운 듯도 했으나 두어판하고나니 적응되서 마찬가지. 이래서야 비트매냐로 팀의 체력을 책임지는 인간성기사 뿌뿌뽕 리믹스 800키 올퍼펙을 달성하는 미친 리듬액션 게임 매냐들을 어찌 만족시킬 수 있을지. 캐쥬얼 유저를 위한 배려어쩌고는 우리 말하지 말도록하자. 이지/노멀 모드는 괜히 만들어놓은건가. 너무 쉬운 난이도는 다음 문제로 연결된다.
곡이 너무 적다. 앞서도 말했듯 이지/노멀이 지나치게 쉬워서 하드로 갔더니 현재 플레이 가능한 곡이 달랑 3곡. 매일 점심시간마다 10-15분씩 꾸준히 일주일간 했더니 질렸다 !! 주 5일 근무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으므로 이 시간을 모두 합치면 75분 밖에 되지 않는다. 이 게임 오베로 알고 있는데, 더 말할나위도 없이 오베면 이제 본선무대다. 근데 본선무대에 올라서 이렇게 적은 컨텐츠로는 좀 곤란... 하지 않겠는가?
반면에 필요노가다요구치는 꽤 높아보인다. 내 기억이 맞다면 한판을 성공리에 클리어하면 대략 8-9개 정도의 비스킷 ( 게임머니 ) 를 주는데, 옷 하나 사려고보니 8000 비스킷이 필요하다. 아니 님들 이건 좀 ... 계산해보자. 1판당 8개의 비스킷을 받는다고 치고, 한판에 1분이 소요된다고 치면, 8000개의 비스킷을 모으기 위해 1000판 = 1000분을 플레이 해야한다. 이건 16시간에 해당한다. 옷 하나 사려면 닥치고 16시간가는거다 ?? 게다가 레벨업을 위한 필요경험치량도 ... 75분동안 플레이했으나 2레벨까지 가는데 필요한 경험치의 대략 40% 정도에 그친 걸로 기억한다. 2레벨가는게 이렇게 힘들어서야 ... 한 3레벨까지는 좀 무난하게 풀어주지. 옷도 디폴트옷만 입고 75분 플레이하느라 얼마나 우울했는데, 공짜로 1-2개 정도는 좀 나눠주고 말이야.
이상의 경험은, 아쉽지만, 모두 싱글플레이를 기반으로 한다. 멀티플레이에서는 경험치도 더 팍팍주고 비스킷도 더 팍팍주고 하드모드에 곡도 많고 키도 더 흥미롭고 서로 배틀하느라 훨씬 더 정신없을지도 모르지만... 멀티플레이는 경험해보지 못했다. 이유는, 안해서 못하는게 아니라 못해서 안한거다. 사람이 없었다. -_- 일주일에 걸친 점심시간 탐방을 마치기까지 나 이외에 단 2명을 보았다. 그들은 같은 방에 들어가있었는데, 내가 들어가자 2초만에 나를 밴 ( ban ) 해버렸다. 슬펐다. 우울했다. 외로웠다. 그래서 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다시 몸을 흔들러 싱글플레이로 갔지만 이제 이 노래들은 지겨워 아악 ~ !! 일단 오베인데 사람이 이렇게 없는건 뭔가 좀 마케팅 팀의 잘못스러운 부분이 아주 강하지 않은가? 온라인 게임이라구 이거. 같이해야 즐겁다는게 상식인 ...
초반 유저인입구조의 매끄러움과 우아함, 섬세하고 부드럽게 플레이어를 다루는 그 솜씨는 확실히 감탄스럽다. 근데 컨텐츠가 너무 부족하다. 앞서도 말했듯 지금 컨텐츠는 75분정도 즐기면 이제 뭐 할거없네 ... 하는 생각이 드는 수준. 게다가 노가다 요구량은 또 왜이렇게 많은지. 여기에 직접적으로 대입할 수는 없겠지만, 일반적으로 노가다의 강도는 컨텐츠의 양과 반비례한다. 즉 노가다가 쎈 이유는 컨텐츠가 빈약하기 때문인 것이다. 이 공식에 비추어봤을 때, 아스트로레인저의 개발팀은 안그래도 부족한 컨텐츠, 초반에 마구 풀면 나중에 줄 거 없을까봐 미친듯이 아끼느라 75분간 플레이했음에도 양말쪼가리 하나 ( 치장 아이템 ) 구입할 수 없고 레벨업까지 필요경험치의 반도 못 채우도록 만들어야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근데 그렇다면 이건 더 문제다. 개발팀이 실제로 ' 장기적인 컨텐츠의 부족 ' 을 예상했기에 초반부터 이렇게 물량풀기를 아끼고 있는 거라면 말이다. 아 글쎄 75분만에 질려버리더라니깐 !! 기본기가 워낙 탄탄하고 흥미롭게 짜여진 게임이라, 곡 좀 팍팍 넣어주고 난이도 좀 올려주면 썩 할만하지 싶은데.
아시모프를 ' 친절 ' 이라고 말한다면 하인라인은 ' 호쾌 ' 하다고 말할까. 젤라즈니 역시 호쾌하긴 하지만 그건 주인공이 호쾌한거고, 하인라인식의 호쾌함과는 또다르다. 하인라인의 책들은 내용 자체가 호쾌하다. 특징으로는 깔끔함과 치밀함? 여기서의 치밀함은 추리소설이나 스릴러식의 치밀함이 아닌 인과관계들 사이의 치밀함이라고 봐야할 것 같다. 한때 내가 가장 열광하던 작가인데, 특유의 마초적인 면이나 내용의 호쾌함이 어린 나의 심금을 구구절절하게 울렸기 때문인 듯 하다.
어릴 적에는 ' 달은 무자비한 밤의 여왕 ' 이나 ' 여름으로 가는 문 ' 등을 보며 열광했고, 스타쉽 트루퍼스는 영화로 널리 알려지긴 했지만 내겐 좀 별로였던 듯. 아, 지금도 기억나는게 스타쉽 트루퍼스가 ' 우주의 전사 ' 로 번역되어 나온 책의 말미에 쓰인 해설이었는데, 하인라인을 군국주의자가 아닌 사람으로 몰아가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던 해설자의 태도에 안쓰러움을 금할 수 없었다. 물론 하인라인이 우리가 생각하는 ' 극우 군국주의자 ' 즉 나치스와 비스무레한 사람이라는 소리는 아니지만, 그런 끼가 다분하다는건 부인할 수 없다고 본다.
애초에, 하인라인의 소설들은 전체적으로 군바리틱한 이미지가 있거든. 앞서도 말했지만 앞뒤가 탄탄한 치밀함이나 약간의 마초스러움, 호쾌함 등은, 잘 따져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 대략 이상적인 군바리상 ' 과 맞아들어가기도 한다. 오, 지금 생각난건데, 내가 말한 하인라인의 탄탄함은 말하자면 ' 군살없음 ' 과 비슷한 이미지이다. 필요한 것만을 취하고 불필요한 부분들은 가차없이 절단해버리는, 그 결과 나타나는 탄탄한 근육질의 몸매. 그것도 모양새를 위해 꾸민 근육들이 아닌 실용적인 근육들로 채워진 몸. 평소 자신을 갈고 닦기에 게으름이 없으며 필요할 때 필요한 용기를 발휘하기에 주저함이 없지만 무모함과 만용을 경계하는 지혜롭기도 한 군인. 대략 그런 간지다. 나태함으로 인한 낙오와 가까스로 최소한의 요구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는 수준의 노력 사이에서 갈등과 번민을 거듭하던 그 시절의 나에게 하인라인이 보여준 탄탄함/군살없음과 실용적 분위기 또는 실용성을 최우선으로 치는 생각들은 대단히 감탄스러운 것이었다. 장교로 복무했던 하인라인의 이력이 아마도 이런 성향에 강한 영향을 끼쳤지 싶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폴리아모리같은, 군바리의 머리에서 나왔다고 보기엔 대단히 파격적인 결혼&연애 시스템이 그의 작품 곳곳에 출현하는건 의외로 꽤 놀라운 일이다. 프라이데이 만세 !! 달 식민지 만세 !!
지금? 지금도 하인라인에 대해 애정을 가지고 있음을 숨길 의사는 없다. 이전의 열광에 비해 다소 약화되긴 했지만 이건 음 ... 이제 이전만큼 정력적이고 에너제틱하지는 않은, 그러나 여전히 괄괄한 꼰대를 보며 세간의 아들들이 흔히 느낄법한 감상이랄까. 우리 둘은 밥상머리에서 정치 얘기를 꺼내면 언제나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싸우긴 하지만, 그렇다고 서로에게 애정이 없는건 당연히 아니다. 그가 과거의 나에게 끼친 영향력이나 나를 성장시켜주었던 데에 대한 고마움은 가슴 속 깊이 간직하고 있다.
어느날 갑자기, 내가 아는 SF 작가들에 대한 총체적인 소감을 적어보고자하는 의욕이 생겨났던 것이다. 마침 요즘은 다소나마 한가하기도하고, 그런 반면에 뭔가 끼적대고자하는 욕구? 욕정? 도 충전이 된 것 같고. 그래서 이런걸 해보기로 했다. 이하의 소감은 철저히 나 개인의 소감이자 느낌이니까. 사실 관계 확인은 구체적으로 하지 않고 절대로 내 기억에만 의존하겠다. 재미삼아 쓰는 글을 그런거 일일이 다 확인하면서 쓰는 스트레스는 받고싶지 않으니까 -_-
아시모프
흔히들 아시모프는 에스에프에 입문하기에 적절한 작가라고하지만, 난 별로 그렇지 않다고 본다. 제이지발라드나 그렉 이건 또는 그에 준하는 패륜적 에스에프 작가들 빼고 대부분의 작가들의 작품들이 사실 에스에프에 입문하기에 별 부족함이 없다. 특히 빅쓰리라 불리우는 사람들의 작품은 전적으로 그렇다. 아마도 아시모프의 작품이 입문용으로 적절하다는 얘기는, 그가 유독 단편을 많이 써서 그런게 아닌가 싶다. 한편 입문하기에 적절한 작가 ... 라고 하면 꽤 낮춰보는 것 같지만 사실 이게 아주 어렵다. 아시모프는 글을 많이 쓰기도 했거니와, 친절하게 쓴 작가로도 아주 유명하다. ( 글을 친절하게 쓴다는게 감이 잘 안오면 뉴로맨서 원서로 읽은 후에 아시모프꺼 아무거나 붙잡고 읽어보도록 하자. ) 내 생각으로는 그토록 많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일관된 일종의 패턴이 필요하고, 아마도 그게 반영된 것이 특유의 친절함이지 싶긴한데 뭐, 아무튼 좋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썩 좋아하지는 않는 편이다. 아시모프의 작품들은 깊은 생각보다는 반짝이는 아이디어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로봇-파운데이션 시리즈 등이나 이백년을 산 사나이 등을 보면 딱히 그런 것 같지는 않고 무엇보다도 로봇공학의 3원칙을 살펴볼 때 생각이 깊지 않다는 말은 어불성설인 것 같지만서도, 다른 작가들의 책과 비교하면서 읽다보면 그런 생각이 들 수 밖에 없다. 여기서 깊은 생각이라는게 앞뒤 잘 재고 이것저것 고려하고 하는게 아니라 뭐랄까, 감성적인 깊이가 별로랄까. 이백년을 산 사나이도, 로봇-파운데이션 시리즈도, 로봇공학의 3원칙도, 모두 논리에 관계된 부분에서 깊이가 있긴 하지만 감성적으로는 별로 깊이가 없다. 뭐 애초에 에스에프라는게 그런 점에서 접근하는게 아니라면 어쩔 수 없고. 그런 측면에서 아시모프는 다른 빅쓰리들에 비해 훨씬 더 공돌이스럽다.
아시모프의 책들 중 가장 좋아하는건 역시 파운데이션 시리즈 정도? 그 모든게 다닐을 둘러싼 장대한 서시사로 느껴지기 때문인데, 그 점에서는 건버스터-다이버스터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역시나 앞서 설명한대로, 아시모프의 공돌이스러움은 다닐을 둘러싸고 흘러간 우주역사의 유구함에 대한 감성적인 강조보다는 다른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니까 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