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도 열심히 말해왔던 바고, 요즘은 말하는데 지쳐서 잘 하지 않는 말이지만, 성숙한 어른은 초딩이 앞에서 어떤 개쑈를 하건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냥 귀여운 짓이라고만 이해한다. 실제로 귀엽기 때문이자, 초딩이 무슨 짓을 하든 자기에게 별 위협이나 해가 되지 않을 거라고 보기 때문이다. 어른들은 초딩이 뭔 짓을 하든 관대한 아량을 보인다.
그러나 중딩이나 고딩은 다르다. 사실 왜 중고딩이 초딩에 대해 이런 반응을 보이는지 나도 잘은 모르겠지만, 적당히 얼버무려보자면, 중고딩은 자기들도 초딩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초딩과 자신을 차별화하는게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초딩스러운 행동이나 발언에 대해 격하게 꾸짖으려 한다. 초딩을 조롱하고 비하하며 아직 생각이 여물기는 커녕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는 자기 동생들을 짓누르지 못해 안달이다.
다 자란 어른은 아직 어린 사람들에게 관대하고 너른 자세를 보여준다. 그러나 아직 덜 여문 풋사과같은 중고대딩들은 ( 나 때도 그랬지만 대딩은 아직 성인이라고 칭해주기 민망하다. ) 초딩에 대해 까칠하고 배타적인 자세를 보인다. 관대한 사람의 자세는 그 사람을 돋보이게 하는 것이다.
이런 자세의 차이를 절묘하게 이용하는 분이 한분 있다. 이뭐병 각하 (
중고등학교 과학교과를 무사히 이수하여 최소한의 과학적 사고가 머리에 박힌 사람들은 이 정황을 제대로 판단할 수 있다. 비록 자세는 봐주는 자의 자세를 취하고 있으나 사실은 도망가는 것임을 간파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우리가 헐벗고 굶주렸던 시대, 중졸이 평균학력인 시대를 살아온 우리의 어르신들은 안타깝게도 합리적이라거나 과학적인 사고와는 거리가 좀 먼 방법으로 생각하시기도 한다. 그래서 실체가 아닌 ' 자세 ' 만을 보고, 도망가는 자를 봐주는 자라고 오인하시곤 하는거다.
그럼 우리가 할 일은, 멍청한 청자를 욕하는 일일까? 당연히 그렇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청자를 욕하고 계도하려하기보다는 눈높이를 맞춰주는게 훨씬 더 효율이 좋다. 공개토론과 같이 ' 관찰자 ' 를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서는, 그리고 관찰자가 즉 심판인 상황에서는, 관찰자의 수준에 맞춰줘야한다. 관찰자가 보기에 쫓는 것 같지 않고 쫓겨난 것 같아 보여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이뭐병식 토론자세에는 이뮈병식 대응법을 써줘야하는데, 오히려 그에 압도당하는 방법을 썼으니 나이많은 어르신들이 보기에 이뭐병은 여전히 ' 난놈 ' 으로 보일 수 밖에.
그럼 여기에 대한 대처법은 뭐냐 !! 그건 유료 컨텐츠이므로 결제하신 분만 보실 수 있습니다. 후후후.

이올린에 북마크하기
이올린에 추천하기






